
2026년 6월 19일 금요일 발행
핵은 쥔 채 제재는 벗는다…이란이 꺼낸 '새 협상 문법'
협상의 오래된 공식은 단순했다. 핵을 포기하면 제재를 풀어준다. 그런데 이란이 그 공식을 비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은 스위스에서 약 70일 만에 대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레바논 문제로 대화의 물꼬를 트더니, 호르무즈 해협 통항 보장, 그리고 핵과 제재 해제로 이어지는 의제 순서를 밟았다. 눈에 띄는 건 순서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란은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포기 없이도 제재 해제를 이끌어내는 구도를 만들어가고 있다.
실제로 이란은 MOU(양해각서) 서명 직후 석유 제재 면제를 적용받았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제재 완화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란에 대한 제재는 북한·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강 수준'으로 꼽혔는데, 그 두꺼운 벽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미국 쪽 계산도 단순하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란 제재 설계자는 현재 MOU가 "무기한 연장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쉽게 말해, 이란이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하지 않아도 미국이 당분간 관계 개선을 유지하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정, 중동 내 충돌 억제, 그리고 유가 안정이라는 실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핵보다 '돈과 호르무즈'가 협상의 실질 축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 흐름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이다. 북한은 이미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굳혔고, '핵 포기 → 제재 해제'라는 기존 공식에 응하지 않아왔다. 만약 이란이 핵을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도 제재 완화와 경제적 실익을 얻는 선례를 만든다면,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도 저 방식이 가능하지 않냐"는 논리의 근거가 생긴다. 비핵화 협상 테이블 자체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
체리 두 조각
완전한 비핵화를 고집하다 협상 자체가 무너진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이란과의 단계적 합의는 중동 안정과 유가 안정이라는 실질적 이익을 가져오며, 대화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 핵 위협을 실질적으로 줄이는 현실적 경로다.
핵을 쥔 채 제재를 푸는 선례는 북한을 비롯한 다른 핵 야망 국가들에게 '버티면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단기 실익을 위해 핵 비확산 원칙을 흔들면, 장기적으로 국제 핵 질서 전체가 무너지는 더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
📖 용어 한 입
- MOU
-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 두 당사자가 구체적 조약 체결 전에 합의한 기본 방향을 담은 문서.
- 호르무즈 해협
-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핵심 에너지 요충지.
- 핵 비확산
-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가 새로 핵을 개발·취득하지 못하도록 막는 국제적 원칙과 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