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19일 금요일 발행
88조 중동 재건시장의 문이 열린다…K-건설, 기회인가 신기루인가
전쟁이 멈추면, 건설이 시작된다. 수년간 전쟁과 제재로 파괴된 중동의 에너지 인프라와 도시가 재건 수요를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시장 추산 규모만 약 88조 원. 토목·플랜트·원전까지, 국내 건설업계가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 건설사들은 중동과 인연이 깊다. 1970~80년대 중동 건설 붐 당시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이 사막 위에 도로·항만·빌딩을 올리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이른바 '중동 특수'가 한국 경제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시절이다. 지금도 한국 건설사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시티, UAE 원전(바라카) 수주 등으로 중동 시장에 발을 걸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엔 다를까. 업계의 시선은 생각보다 차갑다. "아직 시기상조"라는 말이 반복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종전 여부 자체가 불확실하다. 미·이란 핵 협상, 가자 휴전, 예멘 내전 등 중동의 갈등 구도는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고 선언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형 프로젝트에 수조 원을 투자할 발주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설령 재건이 본격화되더라도, 수주 경쟁은 치열하다. 중국 건설사들은 이미 중동 시장을 파고들며 저가 수주 전략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미국·유럽 기업들도 자국 정치·외교를 등에 업고 재건 계약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과 경험을 앞세운다 해도, 실제 수주로 이어지는 경로는 멀다.
국내 건설사들이 노리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다. 토목(도로·항만 복구), 플랜트(정유·가스 시설), 원전(에너지 인프라 확충)이다. 특히 원전은 UAE 바라카 프로젝트의 성공 경험을 발판 삼아 중동 내 추가 수주를 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기대 분야로 꼽힌다.
결국 '중동 재건 특수'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타이밍과 외교의 문제다.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은 설득력이 있지만, 언제·얼마나·누가 가져가느냐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체리 두 조각
중동 재건은 수십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대형 수요다. 토목·플랜트·원전 모두 한국 건설사가 강점을 지닌 분야인 만큼, 지금부터 현지 네트워크와 입찰 준비를 갖춰야 한다. '신중론'에만 머물다 중국·유럽 기업에 시장을 내줄 수 있다.
종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동 재건 기대감은 과도하다. 지정학적 불안이 지속되면 프로젝트 중단·대금 회수 지연 등 막대한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건설사들은 섣불리 뛰어들기보다 리스크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내부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