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20일 토요일 발행
동맹인가, 감시인가…한미관계, 다시 정의할 시간이 왔다
한국이 미국의 '감시 대상'이냐는 질문이 나온다.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 이 질문의 핵심은 따로 있다. 한미동맹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느냐, 그 인식 자체가 낡은 건 아닌가 하는 문제다.
한미동맹은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직후 체결됐다. 70년이 넘은 이 관계는 '자동 방위'와 '주한미군 주둔'을 축으로 구성됐다. 그 시절의 논리는 단순했다. 한국은 안보를 받고,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 거점을 확보한다. 이 교환 구조가 수십 년간 한국 외교의 기본 문법이었다.
그런데 세계가 바뀌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동맹을 '가치 공유'보다 '비용 대비 이익'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이 대표적이다. 뮌헨 안보회의에서도 미국의 다자주의 이탈 신호가 감지됐고, 유럽·아시아 동맹국들은 일제히 자국 안보 자율성을 재점검하기 시작했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한미동맹의 '키맨'으로 불린다. 그는 중국 견제를 최우선 전략으로 놓고, 동맹의 가치를 그 기여도로 환산하는 인물이다. 쉽게 말해, 한국이 대중(對中) 전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동맹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AI·공급망이 국력의 새 척도로 떠오른 것도 중요한 맥락이다. 한국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최상위 플레이어다. 이는 미국에게도, 중국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경제 동맹'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 있다. 군사 안보만이 아니라, 기술·산업 협력이 동맹의 새로운 언어가 되고 있다.
문제는 한국 외교가 이 변화를 얼마나 내면화했느냐다. 한국의 외교·안보 관료 사회는 오랫동안 한미동맹을 '주어진 틀'로 운용해왔다. 정책 자율성보다 동맹 신뢰를 앞세우는 관성이 강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했지만, 양측 모두의 압력이 거세지는 지금, 그 모호성이 오히려 전략적 공백이 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결국 지금 한국 외교가 마주한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동맹의 틀 안에서 어떻게 '국익 중심의 자율성'을 확보할 것인가.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외교 전략의 문제다.
체리 두 조각
북핵 위협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이 현실인 상황에서 한미동맹의 결속은 한국 안보의 최후 보루다. 방위비 분담 논란이나 대중 압박 같은 단기 마찰보다, 동맹의 신뢰를 일관되게 쌓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유리하다. 자율성을 앞세우다 동맹 균열이 생기면 오히려 더 큰 안보 비용을 치를 수 있다.
미국 우선주의가 강해질수록 동맹은 자동으로 한국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반도체·AI 등 경제 레버리지를 활용하고, 미중 양측과 맞춤형 실용 외교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 국익 극대화 전략이다. '동맹 신뢰'를 이유로 자국의 정책 선택지를 스스로 좁히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