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25일 목요일 발행
한국 선박, 호르무즈 '탈출' 진행 중…외교의 항로가 열렸다
세계 원유의 약 20%가 지나는 좁은 바닷길, 호르무즈 해협. 이란이 이 길목을 틀어쥐며 한국 선박들의 발이 묶였다. 현재 총 26척 가운데 절반 이상이 통과를 완료했고, 나머지 13척도 빠르게 해협을 빠져나가는 중이다.
이란이 한국 선박을 특별히 겨냥한 데는 이유가 있다. 핵심은 동결된 이란 자금이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이후 한국 내 은행에는 약 70억 달러(한화 약 9조 원)에 달하는 이란 원유 대금이 묶여 있다. 이란 입장에선 자국 돈을 쥐고 있는 한국이 마뜩잖을 수밖에 없었고, 선박 통제는 그에 대한 사실상의 압박 카드였다.
상황이 바뀐 건 양해각서(MOU) 체결 이후다. 한국과 이란이 동결 자금 해제 협상을 위한 공식 채널을 열면서 통항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쉽게 말해 외교가 항로를 뚫은 셈이다.
여기에 나무호 사건도 영향을 미쳤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한국 국적 유조선 나무호를 억류했다가 풀어준 사건은 이란이 물리적 강제 수단까지 동원할 수 있음을 보여줬고, 역설적으로 협상 테이블의 무게감을 높였다.
논란은 남아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특정 항로를 지정해 이를 벗어난 선박에 '대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인근국 오만은 "통행료는 없다"며 이란의 해협 관할권 주장에 분명히 선을 그었다. 국제법상 호르무즈는 '국제 통항로'로 어느 나라도 일방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게 원칙이지만, 이란은 자국 영해를 근거로 독자적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선박 보험료는 이미 급락했다. 시장은 위기가 진정되고 있다고 읽는 분위기다. 그러나 동결 자금의 최종 해제라는 본론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선박이 빠져나간다고 해서 한국과 이란 사이의 복잡한 방정식이 풀린 것은 아니다.
체리 두 조각
이번 통항 재개는 대화와 양해각서 체결이 실질적 성과를 냈다는 증거다. 군사적 대응이나 강경 압박 대신 외교 채널을 열어 동결 자금 협상의 물꼬를 튼 것이 선박 억류 장기화를 막았다. 원칙 있는 대화가 최선의 해법이라는 점을 이번 사례가 보여준다.
이란의 해협 통제 자체가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 협상이 성과를 냈더라도, 이란의 압박에 응하는 방식으로 자금 해제 협상을 시작한 건 '볼모 외교'에 굴복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 국제 통항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향후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